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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의 생활360

12월 7일, 병원에 갑니다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입니다. 매주 가다가 2주 간격으로 바뀌었는데, 그게 오늘이네요. 외형적으로 아픈 건 아니고 마음에 감기가 걸려서 간답니다. 뭐가 그렇게 강박이고, 압박인지 항상 숨이 차는 생활을 해 왔는데 최근 들어서 "순리대로 살자"라는 마음을 먹고 나서는 조금은 긴장이 풀어진 상황입니다. 내가 보는 세상대로 남들이 같이 봐 줄거라는 착각을 지금껏 해 왔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네요. 내가 생각했으니까 매우 합리적이고, 그것은 상대방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근시안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이죠. 그리고 머릿속으로 얼핏 생각하면서 추상적으로 이야기를 하니, 듣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이 또한 아이들이 본인이 사는 세상에 맞추어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인 .. 2023. 12. 7.
대중교통 조조할인(서울) 별일이 없으면 보통 새벽에 출근하는데요, 오늘은 유독 승하차기계에 조조할인 글자가 눈에 들어와서 조조할인은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최근에 시행된 것이 아니라 자그마치 2015년부터 시행된 제도였네요. 06:30분이 그 경계인데요, 그 이전에 대중교통에 탑승하면 기본 요금의 20%를 할인해 주는 제도입니다. 제가 오늘 마을버스를 타고 960원이 찍혔거든요. 마을버스 요금은 1,200원이라고 하니 20%할인이 맞네요. 제도의 취지는 잘 모르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서민이 새벽같이 출근하니 이용 혜택을 주고, 대중교통 이용자도 분산하여 피크 타임을 피하자였을 것 같네요. 또 도입 100일 기념 보도자료에는 06:30까지는 승객이 늘다가 할인이 끝나는 시간에 급감하고, 다시 06:40에 증가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 2023. 12. 7.
2023년 12월 6일 교과서 검정 온라인 등록 신청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교과서 검정 업무를 담당합니다. 모든 교과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아니고, 교과용도서에 관한 구분에서 국정과 인정을 뺀 "검정" 교과 중에서 수학과 과학 교과를 뺀 나머지를 교과를 등록하는 것이지요. (수학과 과학 교과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란 곳에서 합니다.) 아무튼 오늘은 여러 교과의 검정 온라인 등록을 점검했습니다. 제가 직접 입력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교과들이 잘 입력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지요. 이번에 사이트를 리뉴얼했는데 예전보다는 조금 편해진 것 같습니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란 곳은 그저 수능 시험만, 모의평가만 주관하는 곳인줄 알았는데 교과서 검정까지 한다는 걸 보면 꽤나 큰 조직이었던 셈이지요. 어쨌든 평가원의 검정 온라인 등록 기간은 내일인 .. 2023. 12. 6.
고려사로 보는 고려 몽골 전쟁, 1220년~1221년(고종 7년~8년) 강동성 전투 이후 몽골 사신의 무례한 태도가 있었는데요, 1220년은 몽골과의 관계는 무탈하게 지나갔고, 1221년은 몽골과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것 같습니다. 1221년 8월 8일, 기미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 등 13명과 동진(東眞) 사람 8명 및 부녀자 1명이 왔다. 己未 蒙古使著古與等十三人·東眞八人, 幷婦女一人來. 1221년 9월 1일,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가 보고하기를, “또 몽골 사신 저가(這可) 등이 옵니다.”라고 하였다. 東北面兵馬使報, “又有蒙古使這可等來.” 1221년 9월 6일, 정해 왕이 4품 이상의 여러 신하들을 대관전(大觀殿)에 소집하여 뒤에 오는 몽골 사신 영접에 대한 가부를 물었다. 왕은 대비를 한 뒤에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모두 아뢰기를, .. 2023. 11. 26.
고려사로 보는 고려 몽골 전쟁, 1218년~1219년(고종 5년~6년) 고려 거란 전쟁을 다루다가 그렇다면 고려 몽골 전쟁은 어떤 양상이었는지 원문을 통해 알아보고 싶어서 이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1225년이라고 하지만, 그 전에 몽골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부터 보기 위해 1218년을 골랐습니다. 1218년 12월 1일, 12월 기해 초하루 몽골(蒙古)의 원수(元帥) 합진(哈眞, 카치운)과 찰랄(札剌, 차라)이 군사 10,000명을 거느리고 동진국(東眞國)의 포선만노(浦鮮萬奴)가 파견한 완안자연(完顔子淵)의 군사 20,000명과 함께 거란적[丹賊]을 토벌하겠다고 말하면서[聲言] 화주(和州), 맹주(猛州), 순주(順州), 덕주(德州)의 4개 성(城)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곧바로 강동성(江東城)으로 향하였다. 十二月 己亥朔 蒙古元帥哈眞及札剌, 率兵一萬, 與.. 2023. 11. 26.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20년(현종 11년) 귀주대첩의 승리로 이끈 1019년, 전후 처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고, 고려거란전쟁 편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1020년(현종 11년) 2월, 이 달에 이작인(李作仁)이 표문(表文)을 받들고 거란(契丹)에 가서 번국(藩國)이라 칭하며 공물(貢物) 바치기를 예전처럼 할 것을 청하고, 또 구속되어 있던 거란인(契丹人) 지라리(只刺[剌]里)를 돌려보낼 것을 (알렸는데, 그는) 억류된 지 무려 6년이었다. 是月, 遣李作仁奉表如契丹, 請稱藩納貢如故, 且歸所拘人只刺里, 被留凡六年. 1020년 3월 2일, 3월 계축 거란(契丹)의 사신 야율행평(耶律行平)을 돌려보냈다. 三月 癸丑 歸契丹使耶律行平. 1020년 3월 8일, 기미 거란(契丹)에서 사신 검교사도(檢校司徒) 한소옹(韓紹雍)이 왔다. 己未 契丹使檢校司徒.. 2023. 11. 20.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9년(현종 10년) 소손녕과 10만 대군을 앞세워 진격한 거란군. 이에 맞서는 강감찬과 고려군. 한 차례 맞부딪힌 후 다시 1019년에는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까요? 1019년(현종 10년) 1월 3일, 기미 10년(1019) 봄 정월 신유 소손녕(蕭遜寧)이 신은현(新恩縣)에 이르렀는데, 개경(京城)과의 거리가 1백 리(里)였다. 왕이 성 밖의 백성들을 거두어 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청야(淸野) 전술로 〈거란군을〉 대비하였다. 소손녕이 보낸 야율호덕(耶律好德)이 서신을 가지고 통덕문(通德門)에 이르러 군대를 돌리겠다고 아뢰었다. 몰래 정찰 기병 3백 여 명을 보내 금교역(金郊驛)에 이르렀는데, 우리가 보낸 군사 1백 명이 밤을 틈타 엄습하여 죽였다. 己未 十年 春正月 辛酉 蕭遜寧至新恩縣, 去京城百里. 王命收城外民戶入內, 淸.. 2023. 11. 17.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8년(현종 9년) 거란의 흥화진 침입한지 몇 개월, 해는 또 바뀌어 1018년이 밝았습니다. 1018년은 알고 계시겠지만 거란과의 혈투를 벌인 해이기도 합니다. 자 지켜봅시다. 1018년(현종 9년) 5월 18일, 기묘 강감찬(姜邯贊)을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西京留守 內史侍郞平章事)로, 양전(梁稹)을 예부상서 겸 중추사(禮部尙書 兼 中樞使)로 임명하고, 이공(李龔)을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 承旨)로, 서눌(徐訥)을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임명하였다. 己卯 以姜邯贊爲西京留守內史侍郞平章事, 梁稹爲禮部尙書兼中樞使, 李龔爲翰林學士承旨, 徐訥爲左諫議大夫. 1018년 10월 19일, 무신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강감찬(姜邯贊)을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로 임명하였다. 戊申 以內史侍郞平章事姜邯贊爲西北面行營都統使. 1.. 2023. 11. 16.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7년(현종 8년) 거란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치닫고 있는 1016년을 지나 새로운 해가 밝았습니다. 과연 1017년에는 어떤 일이 고려와 거란 사이에 있었을까요? 1017년(현종 8년) 8월 28일, 계사 거란(契丹)의 소합탁(蕭合卓)이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여 공격하였으나 9일 동안 이기지 못하였다. 장군 견일(堅一)·홍광(洪光)·고의(高義)가 출전(出戰)하여 그들을 크게 격파하고 목 베고 획득한 것이 많았다. 흥화진은 고려와 거란의 주된 전장터였나 봅니다. 다행히 1017년에도 흥화진을 잘 지켜내었고요. 거란의 몇 사람이 고려에 투항한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흐르는 한 해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23. 11. 16.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6년(현종 7년) 거란의 침공이 시작된 1015년, 어찌어찌 막아냈지만 더 큰 위기가 다가오는 듯한 1016년이 밝았습니다. 1016년(현종 7년) 1월 5일, 병진 7년(1016) 봄 정월 경술 거란(契丹)의 야율세량(耶律世良)과 소굴열(蕭屈烈)이 곽주(郭州)를 침략하자, 우리 군대가 맞서 싸우다 죽은 자가 수만 명이었으며 〈거란군은〉 군수품을 탈취하여 돌아갔다. 丙辰七年 春正月 庚戌 契丹耶律世良·蕭屈烈侵郭州, 我軍與戰, 死者數萬人, 獲輜重而歸. 1016년 1월 9일, 갑인 거란(契丹)의 사신 10인이 압록강에 도달하자 받아들이지 않았다. 甲寅 契丹使十人到鴨綠江, 不納. 1월부터 거란이 곽주를 침공하는 등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을 듯하였으나 1월이 지나자 큰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다만 수시로 거란인들의 투항이 있었습니다만.. 202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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