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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의 생활360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5년(현종 6년) 거란이 침공하였다가 격퇴당한 1015년을 지나 1016의 해가 밝았습니다.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거란. 어떤 한 해가 펼쳐질지 지켜봅시다. 1015년(현종 6년) 1월 23일, 갑진 〈거란군(契丹兵)이〉 또 통주(通州)를 침략하였다. 甲辰 又侵通州. 1015년 1월, 을묘 6년(1015) 봄 정월 거란(契丹)이 압록강(鴨綠江)에 다리를 만들고, 다리를 끼고 동쪽과 서쪽에 성을 쌓았는데, 〈고려(高麗)에서〉 장수를 보내 공격하여 파괴하려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乙卯六年 春正月 契丹作橋於鴨綠江, 夾橋築東西城, 遣將攻破, 不克. 1015년 3월 19일, 기해 거란(契丹)이 용주(龍州)를 침략하였다. 己亥 契丹侵龍州. 1015년 4월 11일, 여름 4월 경신 거란(契丹)의 사신 장군 야율행평(耶律行平)이 와.. 2023. 11. 16.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4년(현종 5년) 거란이 6성을 요구한 1013년을 지나, 새로운 1014년 해가 밝았습니다. 거란이 6성 요구를 거절한 고려를 그대로 넘길지, 또 다른 침략을 할지 지켜보도록 합시다. 1014년(현종 5년) 8월 11일, 8월 갑자 내사사인(內史舍人) 윤징고(尹徵古)를 송(宋)에 보내 금실로 짜서 만든 용 봉황 무늬의 안복(鞍幞)과 수를 놓은 용 봉황 무늬의 안복 각각 2벌과 좋은 말 22필을 바치고 예전처럼 귀부하기를 거듭 요청하였다. 송 황제가 등주(登州)에 조서(詔書)를 내려 말하기를, “바닷가 선착장에 관(館)을 설치하여 모시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八月 甲子 遣內史舍人尹徵古如宋, 獻金線織成龍鳳鞍幞, 繡龍鳳鞍幞各二, 良馬二十二匹, 仍請歸附如舊. 宋帝詔登州, "置館于海次, 以侍之.” 1014년 9월 13일, 병신.. 2023. 11. 16.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3년(현종 3년) 1012년에는 거란이 입조를 요청하였으나 고려에서 거절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1013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지켜봅시다. 1013년(현종 3년) 1월, 경인 중추원사(中樞院使) 채충순(蔡忠順)을 거란(契丹)에 보냈다. 庚寅 遣中樞院使蔡忠順如契丹. 1013년 1월 5일, 계축 4년(1013) 봄 정월 정유 예빈소경(禮賓少卿) 장계(張洎)를 거란(契丹)에 보냈다. 癸丑 四年 春正月 丁酉 遣禮賓少卿張洎如契丹. 1013년 3월 17일, 무인 거란(契丹)에서 사신 좌감문위 대장군(左監門衛 大將軍) 야율행평(耶律行平)이 와서 흥화(興化) 등 6개 성을 빼앗은 것을 질책하였다. 戊申 契丹使左監門衛大將軍耶律行平來, 責取興化等六城. 1013년 5월 7일, 5월 정유 거란(契丹)이 사신을 보내 연호(年號)를 통화(.. 2023. 11. 15.
고려사로 미리보기, 1012년(현종 3년) 1011년 거란이 물러가고 겨우 개경에 환궁한 현종, 그의 앞에 펼쳐진 고려의 앞날은 어떠할까요? 1012년(현종 3년) 4월, 거란(契丹)이 왕의 친조(親朝)를 명하는 조서를 보냈다. 契丹詔王親朝. 1012년 6월 28일, 갑자 형부시랑(刑部侍郞) 전공지(田拱之)를 거란(契丹)에 보내 여름철 안부를 묻고, 또 왕이 병이 나서 친조(親朝)하지 못함을 알렸다. 거란주(契丹主)가 분노하여 조서(詔書)를 내리기를, 흥화(興化)·통주(通州)·용주(龍州)·철주(鐵州)·곽주(郭州)·귀주(龜州) 등 6개 성을 빼앗으라고 하였다. 甲子 遣刑部侍郞田拱之如契丹, 夏季問候, 且告王病, 不能親朝. 丹主怒, 詔取興化·通州·龍州·鐵州·郭州·龜州等六城. 1012년 9월 4일, 9월 기사 서두공봉관(西頭供奉官) 문유령(文儒領)을 거.. 2023. 11. 15.
고려사로 미리보기, 1011년(현종 2년) 거란의 침공이 시작한 1010년, 왕이 피난을 갈 정도였는데요. 그 다음해는 어떨지 살펴봅시다. 1011년(현종 2년) 1월 1일, 신해 2년(1011) 봄 정월 을해 초하루 거란주(契丹主)가 개경(開京)에 들어가 태묘(大廟), 궁궐, 민가(民家)를 불살라서 모두 탔다. 이 날 왕은 광주(廣州)에 묵었다. 辛亥二年 春正月 乙亥朔 契丹主入京城, 焚燒太廟·宮闕·民屋皆盡. 是日, 王次廣州. 1011년 1월 3일, 정축 왕을 호종하던 여러 신하가 하공진(河拱辰) 등이 잡혔다는 것을 듣고 모두 놀라고 두려워 뿔뿔이 도망쳤으며, 오직 시랑(侍郞) 충숙(忠肅), 장연우(張延祐), 채충순(蔡忠順), 주저(周佇), 유종(柳宗), 김응인(金應仁)만이 떠나지 않았다. 丁丑 扈從諸臣, 聞拱辰等被執, 皆驚懼散走, 惟侍郞忠肅·張.. 2023. 11. 14.
고려사로 미리보기, 1010년(현종 1년) 폭풍 같은 1009년이 지났습니다. 1010년,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보시죠. 1010년(현종 2년) 7월, 가을 7월 무인 초하루 거란(契丹)이 급사중(給事中) 양병(梁炳)과 대장군(大將軍) 나율윤(那律允)을 보내 전왕(前王)의 사망에 대하여 물었다. 秋七月 戊寅朔 契丹遣給事中梁炳, 大將軍那律允, 來問前王之故. 1010년 8월, 8월 정미 초하루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진적(陳頔)과 직중대 상서우승(直中臺 尙書右丞) 윤여(尹餘)를 거란(契丹)에 보냈다. 八月 丁未朔 遣內史侍郞平章事陳頔, 直中臺尙書右丞尹餘如契丹. 1010년 9월, 9월 좌사원외랑(左司員外郞) 김연보(金延保)를 거란(契丹)에 보내 가을철 안부를 물었으며, 좌사낭중(左司郞中) 왕좌섬(王佐暹)과 장작승(將作丞) 백일승(白日昇)을 거.. 2023. 11. 13.
고려사로 미리보기, 1009년(현종 즉위년) 1009년 2월, 목종이 시해되고 현종이 즉위했습니다. 일반적인 왕위 계승이 아닌지라 명분 싸움이 어떻게 벌어질지, 지켜볼까요 1009년(현종 즉위년) 2월, 이 달에 사농경(司農卿) 왕일경(王日卿)을 거란(契丹)에 보내 목종이 죽어 현종이 왕위를 계승하였음을 알렸다. 是月, 遣司農卿王日卿如契丹, 告哀稱嗣. 1009년 4월, 4월 병술 초하루 차공부시랑(借工部侍郞) 이유항(李有恒)을 거란(契丹)에 보내 태후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四月 丙戌朔 遣借工部侍郞李有恒如契丹, 賀太后生辰. 연초에 왕위 계승이 있었고, 이를 거란에 알렸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송나라에 알렸다는 내용은 없고요. 거란과의 관계를 평온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2023. 11. 13.
고려사로 미리보기, 1008~1009년(목종 11년~12년) 거란과의 전쟁 후 이미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잊혀지고 있겠지요. 하지만 거란 전쟁과는 별개로 궁궐의 암투가 치열한데요, 이번에는 목종의 시해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1009년(목종 12년) 1월, 1월부터 양산의 자루가 부러지거나 궁궐에 화재가 일어나는 등 흉흉한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1009년 1월 16일 왕이 여러 날 몸이 편치 않자 늘 내전(內殿)에만 있으면서 여러 신하를 만나기 싫어하였다. 재신(宰臣)들이 매우 두려워하여 침전(寢殿)에 들어가서 문병하기를 요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왕은 채충순(蔡忠順)·최항(崔沆)과 더불어 몰래 후사(後嗣) 문제를 의논한 후 황보유의(皇甫兪義)를 보내 신혈사(神穴寺)에서 대량원군(大良院君)을 맞아오게 하였다. 서경도순검사(西京都.. 2023. 11. 13.
고려사로 미리보기, 1000~1007년(목종 3년~10년) 고려사의 사료가 부족한 것인지, 몇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1000년부터 1006년까지는 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데요, 1007년 다시 기록이 보이니 다시 살펴보기로 하죠. 1007년(목종 10년) 2월, 〈정미〉10년(1007) 봄 2월 거란(契丹)이 야율연귀(耶律延貴)를 보내 왕에게 수의보방추성봉성공신 개부의동삼사 수상서령 (守義保邦推誠奉聖功臣 開府儀同三司 守尙書令) 겸 정사령 상주국(政事令 上柱國)을 더하여 책봉(冊封)하고, 식읍(食邑) 7,000호와 식실봉(食實封) 700호를 더하였다. (丁未)十年 春二月 契丹遣耶律延貴, 來加冊王, 爲守義保邦推誠奉聖功臣開府儀同三司守尙書令兼政事令上柱國, 食邑七千戶·食實封七百戶. 1007년에는 거란이 다시 왕의 작위를 더해 주었습니다. 계속해서 회유하는 모습을 보이는.. 2023. 11. 13.
고려사로 미리보기, 999년(목종 2년) 조용했던 몇 년 간이었습니다. 이제 10세기는 지나고 1000년의 11세기가 도래하는데요, (그 당시 사람들은 아니었겠지만) 10세기의 마지막 해, 999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을까요? 999년(목종 2년) 10월, 거란이 우상시(右常侍) 유적(劉績)을 보내 왕에게 상서령(尙書令)을 더하여 책봉(冊封)하였다. 契丹遣右常侍劉績, 來加冊王尙書令. 송(宋)에 이부시랑(吏部侍郞) 주인소(朱仁紹)를 보내자 〈송의〉 황제가 특별히 그를 불러 보았다. 주인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의 문화[華風]를 사모하고 있으며 거란(契丹)이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음을 알렸다. 황제가 조서(詔書)를 내리니 받아서 돌아왔다. 遣吏部侍郞朱仁紹如宋, 帝特召見. 仁紹自陳國人思慕華風, 爲契丹劫制之狀. 帝賜詔, 齎還. 999년에는 거란..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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