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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의 일상생활/세지의 하루

제사를 지냈습니다, 12월 10일

by 세지_Seji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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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집에서 출발해 중간에 시골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본가로 향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어머니께서 만든 제사 음식을

제사상에 세팅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홍동백서의 원칙에 따라서

제삿상을 세팅하고 저는 단순하게 옮겼을 뿐입니다.

 

옛 성현의 제삿상은 가벼웠다는데,

우리집 제삿상은 가벼워 보이진 않았습니다.

 

제삿상의 원칙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것은 동쪽에. 흰 것은 서쪽에.

어동육서(魚東肉西): 물고기는 동쪽에. 육고기는 서쪽에.

여기에 "조율이시(棗栗梨柹): 대추, 밤, 배, 감"를 추가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제삿상에는 붉은 과일, 흰 과일 그리고 물고기와 육고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보이겠지요.

 

제삿상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요?어려웠던 지난 날에 조상을 생각하며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명분을 쌓아 준 것일까요?요새 들어서 잘 먹지 않는 제사 음식을 보면서계속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아, 물론 변하긴 했습니다만, 직접 하던 것을 산다던가 하는 정도였지,음식 종류의 변동은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어머니께서 하신 음식 또한예전에 했던 것에서 변한 것도 있지만굳이 이걸 해야 했는가 싶었던 것도 있었으니깐요.

 

 

계속해서 이어져 왔던 것이라 행하였지만

그 의미나 유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유래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제사(祭祀): (한국에서는) 조상 제사(신이나 신령, 죽은 사람의 넋 등에게 재물은 봉헌하는 의식)의 의미로 쓰인다.

예로부터는 상나라를 기원으로 본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불교의 습속이 남아서

경국대전에는 문무관 6품 이상 관료는 3대,

7품 이하 관려는 2대, 서민은 부모만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고 하는데,

 

16세기 중반 양반 사회에서부터 주자가례가 정착되어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4대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다만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기에 부모나 2대조까지만 모시고

나머지는 시제사로 종중에서 함께 지내기도 합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 증조할아버지 제사만 집에서 지냈으니

할아버지께서는 부모 제사만 모셨던 것이 되겠네요.

 

말이 길었는데

결과적으로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만 있으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에 내린 건 아니고요.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이긴 했습니다.

다만, 아직까진 어머니께서 제사를 주관하기에

어머니의 가치관과 다툴 필요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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