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로 보는 고려 몽골 전쟁, 1220년~1221년(고종 7년~8년)
강동성 전투 이후 몽골 사신의 무례한 태도가 있었는데요, 1220년은 몽골과의 관계는 무탈하게 지나갔고, 1221년은 몽골과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것 같습니다. 1221년 8월 8일, 기미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 등 13명과 동진(東眞) 사람 8명 및 부녀자 1명이 왔다. 己未 蒙古使著古與等十三人·東眞八人, 幷婦女一人來. 1221년 9월 1일,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가 보고하기를, “또 몽골 사신 저가(這可) 등이 옵니다.”라고 하였다. 東北面兵馬使報, “又有蒙古使這可等來.” 1221년 9월 6일, 정해 왕이 4품 이상의 여러 신하들을 대관전(大觀殿)에 소집하여 뒤에 오는 몽골 사신 영접에 대한 가부를 물었다. 왕은 대비를 한 뒤에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모두 아뢰기를, ..
2023. 11. 26.
고려사로 보는 고려 몽골 전쟁, 1218년~1219년(고종 5년~6년)
고려 거란 전쟁을 다루다가 그렇다면 고려 몽골 전쟁은 어떤 양상이었는지 원문을 통해 알아보고 싶어서 이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1225년이라고 하지만, 그 전에 몽골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부터 보기 위해 1218년을 골랐습니다. 1218년 12월 1일, 12월 기해 초하루 몽골(蒙古)의 원수(元帥) 합진(哈眞, 카치운)과 찰랄(札剌, 차라)이 군사 10,000명을 거느리고 동진국(東眞國)의 포선만노(浦鮮萬奴)가 파견한 완안자연(完顔子淵)의 군사 20,000명과 함께 거란적[丹賊]을 토벌하겠다고 말하면서[聲言] 화주(和州), 맹주(猛州), 순주(順州), 덕주(德州)의 4개 성(城)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곧바로 강동성(江東城)으로 향하였다. 十二月 己亥朔 蒙古元帥哈眞及札剌, 率兵一萬, 與..
2023. 11. 26.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20년(현종 11년)
귀주대첩의 승리로 이끈 1019년, 전후 처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고, 고려거란전쟁 편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1020년(현종 11년) 2월, 이 달에 이작인(李作仁)이 표문(表文)을 받들고 거란(契丹)에 가서 번국(藩國)이라 칭하며 공물(貢物) 바치기를 예전처럼 할 것을 청하고, 또 구속되어 있던 거란인(契丹人) 지라리(只刺[剌]里)를 돌려보낼 것을 (알렸는데, 그는) 억류된 지 무려 6년이었다. 是月, 遣李作仁奉表如契丹, 請稱藩納貢如故, 且歸所拘人只刺里, 被留凡六年. 1020년 3월 2일, 3월 계축 거란(契丹)의 사신 야율행평(耶律行平)을 돌려보냈다. 三月 癸丑 歸契丹使耶律行平. 1020년 3월 8일, 기미 거란(契丹)에서 사신 검교사도(檢校司徒) 한소옹(韓紹雍)이 왔다. 己未 契丹使檢校司徒..
2023. 11. 20.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8년(현종 9년)
거란의 흥화진 침입한지 몇 개월, 해는 또 바뀌어 1018년이 밝았습니다. 1018년은 알고 계시겠지만 거란과의 혈투를 벌인 해이기도 합니다. 자 지켜봅시다. 1018년(현종 9년) 5월 18일, 기묘 강감찬(姜邯贊)을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西京留守 內史侍郞平章事)로, 양전(梁稹)을 예부상서 겸 중추사(禮部尙書 兼 中樞使)로 임명하고, 이공(李龔)을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 承旨)로, 서눌(徐訥)을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임명하였다. 己卯 以姜邯贊爲西京留守內史侍郞平章事, 梁稹爲禮部尙書兼中樞使, 李龔爲翰林學士承旨, 徐訥爲左諫議大夫. 1018년 10월 19일, 무신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강감찬(姜邯贊)을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로 임명하였다. 戊申 以內史侍郞平章事姜邯贊爲西北面行營都統使. 1..
2023. 11. 16.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5년(현종 6년)
거란이 침공하였다가 격퇴당한 1015년을 지나 1016의 해가 밝았습니다.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거란. 어떤 한 해가 펼쳐질지 지켜봅시다. 1015년(현종 6년) 1월 23일, 갑진 〈거란군(契丹兵)이〉 또 통주(通州)를 침략하였다. 甲辰 又侵通州. 1015년 1월, 을묘 6년(1015) 봄 정월 거란(契丹)이 압록강(鴨綠江)에 다리를 만들고, 다리를 끼고 동쪽과 서쪽에 성을 쌓았는데, 〈고려(高麗)에서〉 장수를 보내 공격하여 파괴하려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乙卯六年 春正月 契丹作橋於鴨綠江, 夾橋築東西城, 遣將攻破, 不克. 1015년 3월 19일, 기해 거란(契丹)이 용주(龍州)를 침략하였다. 己亥 契丹侵龍州. 1015년 4월 11일, 여름 4월 경신 거란(契丹)의 사신 장군 야율행평(耶律行平)이 와..
2023. 11. 16.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4년(현종 5년)
거란이 6성을 요구한 1013년을 지나, 새로운 1014년 해가 밝았습니다. 거란이 6성 요구를 거절한 고려를 그대로 넘길지, 또 다른 침략을 할지 지켜보도록 합시다. 1014년(현종 5년) 8월 11일, 8월 갑자 내사사인(內史舍人) 윤징고(尹徵古)를 송(宋)에 보내 금실로 짜서 만든 용 봉황 무늬의 안복(鞍幞)과 수를 놓은 용 봉황 무늬의 안복 각각 2벌과 좋은 말 22필을 바치고 예전처럼 귀부하기를 거듭 요청하였다. 송 황제가 등주(登州)에 조서(詔書)를 내려 말하기를, “바닷가 선착장에 관(館)을 설치하여 모시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八月 甲子 遣內史舍人尹徵古如宋, 獻金線織成龍鳳鞍幞, 繡龍鳳鞍幞各二, 良馬二十二匹, 仍請歸附如舊. 宋帝詔登州, "置館于海次, 以侍之.” 1014년 9월 13일, 병신..
2023.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