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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의 도서 생활/세지와 고전 읽기

고려사로 미리보기, 1010년(현종 1년)

by 세지_Seji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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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1009년이 지났습니다.

1010년,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보시죠.

 

 

1010년(현종 2년) 7월,

가을 7월 무인 초하루 거란(契丹)이 급사중(給事中) 양병(梁炳)과 대장군(大將軍) 나율윤(那律允)을 보내 전왕(前王)의 사망에 대하여 물었다.

秋七月 戊寅朔 契丹遣給事中梁炳, 大將軍那律允, 來問前王之故.

 

 

1010년 8월,

8월 정미 초하루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진적(陳頔)과 직중대 상서우승(直中臺 尙書右丞) 윤여(尹餘)를 거란(契丹)에 보냈다.

八月 丁未朔 遣內史侍郞平章事陳頔, 直中臺尙書右丞尹餘如契丹.

 

 

1010년 9월,

9월 좌사원외랑(左司員外郞) 김연보(金延保)를 거란(契丹)에 보내 가을철 안부를 물었으며, 좌사낭중(左司郞中) 왕좌섬(王佐暹)과 장작승(將作丞) 백일승(白日昇)을 거란 동경(東京)에 보내 우호를 다졌다.

九月 遣左司員外郞金延保如契丹, 秋季問候, 左司郞中王佐暹, 將作丞白日昇如契丹東京, 修好.

 

 

1010년 10월 1일,

겨울 10월 병오 초하루 참지정사(叅知政事) 강조(康兆)를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로, 검교상서우복야 상장군(檢校尙書右僕射 上將軍) 안소광(安紹光)을 행영도병마사(行營都兵馬使)로, 소부감(少府監) 최현민(崔賢敏)을 좌군병마사(左軍兵馬使)로, 형부시랑(刑部侍郞) 이방(李昉)을 우군병마사(右軍兵馬使)로, 예빈경(禮賓卿) 박충숙(朴忠淑)을 중군병마사(中軍兵馬使)로, 형부상서(刑部尙書) 최사위(崔士威)를 통군사(統軍使)로 임명하여, 병사 30만 명을 통솔하여 통주(通州)에 진을 치고 거란(契丹)에 대비하였다.

冬十月 丙午朔 以叅知政事康兆行營都統使, 檢校尙書右僕射上將軍安紹光行營都兵馬使, 少府監崔賢敏左軍兵馬使, 刑部侍郞李昉右軍兵馬使, 禮賓卿朴忠淑中軍兵馬使, 刑部尙書崔士威統軍使, 率兵三十萬, 軍于通州, 以備契丹.

 

 

1010년 10월 8일,

계축 거란(契丹)이 급사중(給事中) 고정(高正)과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 한기(韓杞)를 보내 군대를 일으켰음을 알렸다. 참지정사(叅知政事) 이예균(李禮均)과 우복야(右僕射) 왕동영(王同穎)을 거란에 보내 화해를 청하였다.

癸丑 契丹遣給事中高正, 閤門引進使韓杞來告興師. 叅知政事李禮均, 右僕射王同穎如契丹, 請和.

 

 

1010년 11월 1일,

11월 병자 초하루 기거랑(起居郞) 강주재(姜周載)를 거란(契丹)에 보내 동지(冬至)를 하례하였다.

十一月 丙子朔 遣起居郞姜周載如契丹, 賀冬至.

 

거란주(契丹主)가 장군 소응(蕭凝)을 보내 친히 정벌에 나섰음을 알렸다.

契丹主遣將軍蕭凝, 來告親征.

 

 

1010년 11월 16일,

신묘 거란주(契丹主)가 직접 보병(步兵)과 기병(騎兵) 40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자, 양규(楊規)·이수화(李守和) 등이 굳게 지키며 항복하지 않았다.

辛卯 契丹主自將步騎四十萬, 渡鴨綠江, 圍興化鎭, 楊規·李守和等固守不降.

 

 

1010년 11월 24일,

기해 강조(康兆)가 거란(契丹)과 통주(通州)에서 싸웠는데, 패배하여 군대가 무너지고 사로잡혔다.

己亥 康兆與契丹, 戰于通州, 敗績就擒.

 

 

1010년 12월 6일,

경술 거란군[丹兵]이 곽주(郭州)를 함락하였다.

庚戌 丹兵陷郭州.

 

 

1010년 12월 8일,

임자 거란군[丹兵]이 청수강(淸水江)에 도착하자, 안북도호부사 공부시랑(安北都護府使 工部侍郞) 박섬(朴暹)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 주민들이 모두 흩어졌다.

壬子 丹兵至淸水江, 安北都護府使工部侍郞朴暹棄城遁, 州民皆潰.

 

 

1010년 12월 9일,

계축 거란군[丹兵]이 서경(西京)에 이르러 중흥사(中興寺) 탑을 불살랐다.

癸丑 丹兵至西京, 焚中興寺塔.

 

 

1010년 12월 10일,

갑인 〈거란군이〉 숙주(肅州)를 함락하였다.

甲寅 陷肅州.

 

 

1010년 12월 17일,

신유 거란주(契丹主)가 서경(西京)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포위를 풀고 동쪽으로 갔다.

辛酉 契丹主攻西京不拔, 解圍而東.

 

 

1010년 12월 19일,

계해 서경(西京)의 신사(神祠)에 회오리바람[旋風]이 갑자기 일어나 거란(契丹)의 군사와 말이 모두 넘어졌다.

癸亥 西京神祠, 旋風忽起, 契丹軍馬皆僨.

 

 

1010년 12월 28일,

임신 밤에 왕이 후비(后妃)와 함께 거란군[丹兵]을 피하여 남쪽으로 갔다.

壬申 夜, 王與后妃, 避丹兵南幸.

 

 

1010년 12월 30일,

갑술 왕이 양주(楊州)에 묵었는데 하공진(河拱辰)과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고영기(高英起)를 파견하여 표문(表文)을 받들고 거란(契丹) 진영에 가게 하여 화해를 청하였다.

甲戌 次楊州, 遣河拱辰戶部員外郞高英起奉表, 往丹營請和.

 

 

1010년 7월, 거란이 목종의 죽음에 사신을 보낸 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됩니다. 사신을 두 차례나 보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거란은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침공하게 됩니다.

 

고려를 침공한 거란은 파죽지세로 통주에서의 전투에서 패배하고,곽주가 함락되었으며, 서경의 중흥사에 불지르고현종이 결국 남쪽으로 피난 가는 지경에 이릅니다.

 

거란은 아무래도 이민족 기병 부대가 강점이라기동력이 좋은 것 같습니다. 과연 현종이 이를 피해 무사히 피난할 수 있을지,1011년 상황을 지켜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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