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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의 도서 생활/세지와 고전 읽기

고려사로 미리보기, 996년(성종 15년)

by 세지_Seji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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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활동이 한창인 995년이었는데요,

996년에는 고려와 거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996년(성종 15년) 3월,

〈병신〉15년(996) 봄 3월 거란(契丹)이 한림학사(翰林學士) 장간(張幹)과 충정군절도사(忠正軍節度使) 소숙갈(蕭熟葛)을 보내 왕을 책봉(冊封)하며 말하기를,
“한(漢)은 호한(呼韓)을 중히 여겨 그 지위를 열후(列侯)나 왕의 위에 두었고, 주(周)는 웅역(熊繹)을 존중하여 대대로 땅을 봉하였다. 내가 옛날을 본받아 임금이 되어 먼 나라에까지 은혜를 넓히려고 한다. 동쪽 바다 저 바깥에 있으며 북극(北極)에 순응하여 와서 왕이 되어 세월이 여러 번 옮겨가도 산 넘고 물 건너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실제로 책봉하는 의례(儀禮)를 거행하여 내부(內附)해 온 정성을 표창해야 할 것이다. 이에 옛날부터 전한 법식을 취하여 제왕이 내리는 예수(禮數)를 공경스럽게 베풀고자 한다. 아아! 그대 고려국왕(高麗國王) 왕치(王治)는 그 땅이 메기가 사는 골짜기[鯷壑, 고려의 별칭]에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蕃隅]을 위세로 눌렀다. 선인(先人)의 뛰어난 공훈(功勳)을 이어받아 군자(君子)의 옛 나라를 다스리니, 글은 예법(禮法)이 있으며 지혜는 만물이 변화하는 세세한 부분도 다 알았다. 사대(事大)의 의례가 능히 온전하였으며 조절하는 요체(要體)가 모두 〈그를〉 도왔다. 압록강(鴨綠江)이 서쪽 경계이나 일찍이 그 험한 지세를 믿는 마음이 없었으며, 황제가 있는[鳳扆] 북쪽을 우러러보며 때를 맞추어 조공(朝貢)을 보냈다. 그대의 충성과 공경함을 말하고 생각하자면 마땅히 높은 관작(官爵)에 봉하여 1품의 귀한 자리에 올리고 바로 홀로 앉는 영예로운 직위를 받아야 한다. 이에 국왕의 작위를 주어 더욱 나라의 은혜를 나타내려고 그대를 책봉하여 개부의동삼사 상서령 고려국왕(開府儀同三司 尙書令 高麗國王)으로 삼는다. 아아! 동해(東海)와 태산(泰山)의 바깥 지역에서는 오직 그대만이 홀로 존귀하며, 진한(辰韓)과 변한(卞韓)의 지역은 오직 그대만이 온전히 가지는 것이다. 이 부귀(富貴)를 지켜 나가면서 저 가득 차 기울음을 경계할 것이며, 소인(小人)의 꾀를 쓰지 말고 큰 임금의 명령을 어기지 마시오. 그대의 일을 공경히 닦음으로써 우리 조정(朝廷)의 법에 합치되도록 하고, 태평성대(太平聖代)에 같이 올라 〈천자가 그대에게 내린〉 큰 명령을 드날린다면 아름답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다. 장간(張幹) 등이 개경(開京) 서쪽 교외에 이르러 단(壇)을 쌓고 책명(冊命)을 전하니, 왕이 예를 갖추어 책명을 받고 대사면령(大赦免令)을 내렸다.

(丙申)十五年 春三月 契丹遣朝林學士張幹, 忠正軍節度使蕭熟葛, 來冊王曰, “漢重呼韓, 位列侯王之上, 周尊熊繹, 世開土宇之封. 朕法古爲君, 推恩及遠. 惟東溟之外域, 順北極以來王, 歲月屢遷, 梯航靡倦, 宜擧眞封之禮, 用旌內附之誠. 爰採彝章, 敬敷寵數. 咨! 爾高麗國王王治, 地臨鯷壑, 勢壓蕃隅. 繼先人之茂勳, 理君子之舊國, 文而有禮, 智以識機. 能全事大之儀, 盡協酌中之体. 鴨江西限, 曾無恃險之心, 鳳扆北瞻, 克備以時之貢. 言念忠敬, 宜示封崇, 升一品之貴階, 正獨坐之榮秩. 仍䟽王爵, 益表國恩, 冊爾爲開府儀同三司尙書令高麗國王. 於戱! 海岱之表, 汝惟獨尊, 辰卞之區, 汝惟全有. 守玆富貴, 戒彼滿盈, 無庸小人之謀, 勿替大君之命. 敬修乃事, 用合朝經, 俾爾國人, 同躋壽域. 永揚休命, 可不美哉!” 幹等至西郊, 築壇傳冊, 王備禮受冊, 大赦.

 

한언경(韓彦卿)을 거란(契丹)에 보내 폐백(幣帛)을 바쳤다.

韓彦卿如契丹, 納幣.

 

 

관계를 회복하는 데 이어 왕위를 책봉했습니다.

고려가 이미 황제를 칭했을텐데, 요나라가 자존심으로 찍어 누르는 모양새였을까요?

어쨌든 전후에 어르고 달래는 형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려사 자체의 기록이 부족한 게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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