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이 침공하였다가 격퇴당한 1015년을 지나
1016의 해가 밝았습니다.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거란.
어떤 한 해가 펼쳐질지 지켜봅시다.
1015년(현종 6년) 1월 23일,
갑진 〈거란군(契丹兵)이〉 또 통주(通州)를 침략하였다.
甲辰 又侵通州.
1015년 1월,
을묘 6년(1015) 봄 정월 거란(契丹)이 압록강(鴨綠江)에 다리를 만들고, 다리를 끼고 동쪽과 서쪽에 성을 쌓았는데, 〈고려(高麗)에서〉 장수를 보내 공격하여 파괴하려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乙卯六年 春正月 契丹作橋於鴨綠江, 夾橋築東西城, 遣將攻破, 不克.
1015년 3월 19일,
기해 거란(契丹)이 용주(龍州)를 침략하였다.
己亥 契丹侵龍州.
1015년 4월 11일,
여름 4월 경신 거란(契丹)의 사신 장군 야율행평(耶律行平)이 와서 또 6성을 돌려달라고 하자, 사신을 억류하여 보내지 않았다.
夏四月 庚申 契丹使將軍耶律行平來, 又索六城, 拘留不遣.
1015년 9월 7일,
9월 갑인 거란(契丹)의 사신 감문장군(監門將軍) 이송무(李松茂)가 와서 6성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九月 甲寅 契丹使監門將軍李松茂來, 索六城.
1015년 9월 12일,
기미 거란(契丹)이 통주(通州)를 공격하였다.
己未 契丹來攻通州.
1015년 9월 16일,
계해 흥화진(興化鎭) 대장군(大將軍) 정신용(鄭神勇), 별장(別將) 주연(周演), 산원(散員) 임억(任憶), 교위(校尉) 양춘(楊春), 태의승(大醫丞) 손간(孫簡), 태사승(太史丞) 강승영(康承穎) 등이 군대를 이끌고 거란군(契丹軍)의 후미로 가서 7백 여 급을 격살(擊殺)하였으며, 정신용 및 6인이 전사하였다.
癸亥 興化鎭大將軍鄭神勇, 別將周演, 散員任憶, 校尉楊春, 太醫丞孫簡, 太史丞康承穎等引兵, 出契丹軍後, 擊殺七百餘級, 神勇及六人死之.
1015년 9월 20일,
정묘 거란(契丹)이 영주성(寧州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다.
丁卯 契丹攻寧州城, 不克而退.
1015년 9월 23일,
경오 대장군(大將軍) 고적여(高積餘), 장군 소충현(蘇忠玄)과 고연적(高延迪), 산원(散員) 김극(金克), 별장(別將) 광참(光參) 등이 추격하다가 전사하였고, 거란군[丹兵]이 병마판관(兵馬判官) 왕좌(王佐)와 녹사(錄事) 노현좌(盧玄佐)를 〈포로로〉 잡아갔다.
庚午 大將軍高積餘, 將軍蘇忠玄·高延迪, 散員金克, 別將光參等追擊死之, 丹兵虜兵馬判官王佐, 錄事盧玄佐而去.
1015년 미상,
이 해에 거란(契丹)이 선화진(宣化鎭)과 정원진(定遠鎭)을 탈취하여 성을 쌓았다.
是歲, 契丹取宣化·定遠二鎭, 城之.
민관시랑(民官侍郞) 곽원(郭元)을 송(宋)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거란(契丹)이 해마다 침략한다고 알렸다. 표문(表文)을 보내 말하기를, “성스러운 위세를 빌어 지혜로운 계략을 보이고자 하므로, 혹시 위험한 때에 이를지 모르니 미리 위급한 상황을 구제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遣民官侍郞郭元如宋, 獻方物, 仍告契丹連歲來侵. 表曰, “借以聖威, 示其睿略, 或至傾危之際, 預垂救急之恩.”
6성에 대한 명분으로 고려를 계속 침략하고 있는 거란입니다.
때로는 선수를 치고, 때로는 패배하면서 계속해서 밀고 밀리는 전투 중입니다.
아직까지 대규모 원정은 아닌 듯하고, 조만간 큰 전쟁이 일어날 듯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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