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1019년2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9년(현종 10년) 소손녕과 10만 대군을 앞세워 진격한 거란군. 이에 맞서는 강감찬과 고려군. 한 차례 맞부딪힌 후 다시 1019년에는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까요? 1019년(현종 10년) 1월 3일, 기미 10년(1019) 봄 정월 신유 소손녕(蕭遜寧)이 신은현(新恩縣)에 이르렀는데, 개경(京城)과의 거리가 1백 리(里)였다. 왕이 성 밖의 백성들을 거두어 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청야(淸野) 전술로 〈거란군을〉 대비하였다. 소손녕이 보낸 야율호덕(耶律好德)이 서신을 가지고 통덕문(通德門)에 이르러 군대를 돌리겠다고 아뢰었다. 몰래 정찰 기병 3백 여 명을 보내 금교역(金郊驛)에 이르렀는데, 우리가 보낸 군사 1백 명이 밤을 틈타 엄습하여 죽였다. 己未 十年 春正月 辛酉 蕭遜寧至新恩縣, 去京城百里. 王命收城外民戶入內, 淸.. 2023. 11. 17.
고려사로 고려거란전쟁 미리보기, 1018년(현종 9년) 거란의 흥화진 침입한지 몇 개월, 해는 또 바뀌어 1018년이 밝았습니다. 1018년은 알고 계시겠지만 거란과의 혈투를 벌인 해이기도 합니다. 자 지켜봅시다. 1018년(현종 9년) 5월 18일, 기묘 강감찬(姜邯贊)을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西京留守 內史侍郞平章事)로, 양전(梁稹)을 예부상서 겸 중추사(禮部尙書 兼 中樞使)로 임명하고, 이공(李龔)을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 承旨)로, 서눌(徐訥)을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임명하였다. 己卯 以姜邯贊爲西京留守內史侍郞平章事, 梁稹爲禮部尙書兼中樞使, 李龔爲翰林學士承旨, 徐訥爲左諫議大夫. 1018년 10월 19일, 무신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강감찬(姜邯贊)을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로 임명하였다. 戊申 以內史侍郞平章事姜邯贊爲西北面行營都統使. 1.. 2023. 11. 1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