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폐위1 고려사로 미리보기, 1008~1009년(목종 11년~12년) 거란과의 전쟁 후 이미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잊혀지고 있겠지요. 하지만 거란 전쟁과는 별개로 궁궐의 암투가 치열한데요, 이번에는 목종의 시해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1009년(목종 12년) 1월, 1월부터 양산의 자루가 부러지거나 궁궐에 화재가 일어나는 등 흉흉한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1009년 1월 16일 왕이 여러 날 몸이 편치 않자 늘 내전(內殿)에만 있으면서 여러 신하를 만나기 싫어하였다. 재신(宰臣)들이 매우 두려워하여 침전(寢殿)에 들어가서 문병하기를 요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왕은 채충순(蔡忠順)·최항(崔沆)과 더불어 몰래 후사(後嗣) 문제를 의논한 후 황보유의(皇甫兪義)를 보내 신혈사(神穴寺)에서 대량원군(大良院君)을 맞아오게 하였다. 서경도순검사(西京都.. 2023. 11. 13. 이전 1 다음 반응형